부산융심리분석연구소

Jung Institute of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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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

April 8, 2009

I. 산악자전거

언젠가부터 모 제약회사 직원과 나 주변의 동료 정신과 의사 몇 분으로부터 산악자전거를 타자는 권유를 거의 협박에 가깝게 들어왔다.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은 이전부터 있던 터라 관심이 갔지만 위험해 보여 겁이 좀 났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결국 작년 늦여름 즈음에 나로서는 상당한 돈을 들여 산악자전거를 덜컥 들여놓고 말았다. 내가 지금 사는 집 부근에는 공기 좋고 많이 높지 않은 언덕이 하나 있어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리면 건강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질 것 같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가 보니 이른 아침이라 차도 거의 없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 곳은 멋진 일출로 꽤나 알려진 곳이라서 넓게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 전까지 아침에 일어나 헬스클럽에 가서 러닝 머신 등의 운동을 하였지만, 운동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런 장관을 직접 느끼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좋은 것 같았다.

더욱더 좋은 것은 산악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하여 동호인들과 함께 가까운, 아니 꽤 먼 거리에 있는 산악자전거 코스로 투어를 가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근처의 산을 등산객들이 비교적 적은 길을 따라 달리는 것인데 등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포장된 길만 가는 것이 아닌, 자갈과 돌이 있는 비포장 도로와 낙엽이 쌓인 길을 숨차게 페달을 밟으며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면서 조금 위험하기도 하지만 짜릿한 흥분을 맛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이 펼쳐지기도 한다. 방송에 종종 산악자전거 사고가 보도되기도 하고 동호인 중에 내가 잘 아는 동료가 실제로 사고를 당하여 수술을 하고 입원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나도 두 번째 따라간 투어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져 안경을 부러뜨리고 어깨부터 엉덩이까지 꽤 심한 상처를 입기도 하였다.

자전거를 타면서 떠오른 생각인데, 내가 한동안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얼마나 하면서 살아왔는가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 중에 어떤 것들이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이고 어떤 것들이 그렇지 않은가? 어떤 것들은 내가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과연 이런 것들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구분하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II. 오디오

어릴 때 집에 당시로서는 꽤 괜찮은 전축이 있었다. 월남전에서 종군기자를 하시던 외삼촌께서 귀국길에 사오신 것이었다. 그 당시는 그게 뭔지도 몰랐는데 크고 나서 보니 일제 켄우드 리시버에 파이오니어 스피커였다. 그것으로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잘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흔하지 않았던 외제 오디오(전축)라서 그랬는지 어디에 가서도 그것보다 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던 중 공중보건의 생활을 할 때에 처음으로 내 돈으로 오디오라는 것을 사게 되었다. 실은 아버님께서 좀 보태주셨지만. 오디오 샾에 좋은 오디오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소리도 훨씬 좋은 것들이었다. 그때부터 오디오 샾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하였다. 공중보건의 생활로 인해 시간이 많은 때문이었으리라.거기서 커피잔을 홀짝이며 ‘T 스피커는 역시 현이 좋아’, ‘M 앰프는 외모는 준수한데 소리는 영 아마추어 같단 말이야’ 라는 등의 시시한 평론을 해 대었다.가격이 녹록하지 않은데다가 공중보건의 주머니가 별로 무겁지 못해 업그레이드는 꿈도 못 꾸고 옆(?)그레이드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어머님과 집을 합치면서 좀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내와 둘이 살던 작은 집에서는 자그마한 북쉘프 스피커로만 음악을 듣고 있다가 큰집에 이사한다는 핑계로 톨보이형 스피커를 들여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디오 샾을 기웃거리던 중 좀 과격한 가격의 스피커를 만났다. 그 스피커의 크기, 색깔, 그리고 나무의 무늬까지 지금 집에 너무나 어울릴 듯 했다. 그 당시로서는 가공할 만한 가격에 침만 삼키고 있던 차에 같이 따라갔던 아들녀석이 그릴을 벗겨놓은 스피커 유닛의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기겁을 하고 아이를 떼 놓았는데 샾 직원은 움푹 들어간 곳을 테이프로 원위치 시키며 “괜찮습니다. 댁에 이 스피커를 들여놓으시면 됩니다.”라며 오히려 여유 있게 웃음지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내도 집에 딱 어울리겠다며 들여 놓고 싶으면 들여 놓자고 하여 과다한 출혈을 감수하고, 아이의 만행을 핑계 삼아 그 스피커를 들여놓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황제는 역시 입맛이 까다로웠다. 웬만한 앰프는 두말없이 주저앉아버렸다. 급기야 엄청난 출혈을 감행하며 대형 앰프를 물렸다. 진공관이 수십 개 장착된 것으로 열을 제대로 받으면 계란후라이도 가능할 듯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정말 소위 말하는 천상의 소리였다. 바이올린 독주가 연주될 때면 무대 위에 조명을 받는 연주자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느껴지고, 악기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무대가 조금씩 커져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 질 때에는 정말로 이래서 오디오를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 녀석들이 제대로 소리를 내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먼저 전기에 신경을 써야 하고 예열에도 힘을 써야 한다.앰프에 전원을 넣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 집에서 편안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도 내 처지에는 사치인데다 하물며 음악을 듣는답시고 몇 시간 동안 전원을 넣어놓고 기다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오디오의 주인인지 내가 오디오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지 헷갈렸다. 그래서일까? 몇 개월 전 좀 있다 미국에 연수 간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다 팔아 치워버렸다. 오디오의 끝은 FM 모노 라디오라고 한다. 나도 혹시 그 단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닐까?

 

III. 아이, 미래와 현재

내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다. 당연히 공부하기 싫어하고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요즘 환경으로 볼 때 재미있는 것들의 유혹은 너무나 많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밤 늦게 더 놀고 싶어하고 늦잠 자고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건강에 좋지 못한 과자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못 먹게 하는 엄마, 아빠와 거의 매일 화내고 싸우고 토라지지만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즐겁게 뛰어 논다. 내 아이를 보면서 나는 어릴 때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얼마나 하고 살았나 생각해 본다.

나는 어릴 때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약국을 개업하고 계시던 어머니의 영향이었을까? 그 당시 약국에 있던 비이커, 시험관, 그리고 알코올 램프 등을 뒷편 창고에 가져다 놓고는 실험실이랍시고 간판을 내 걸었다.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 앞으로 펼쳐질 내 미래에 대해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였다.

책을 읽기 보다는 손으로 사물을 만지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보면서 내 어릴 때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 아들도 자신은 커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실험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의대에 진학을 하였고 정신의학을 전공하였다. 게다가 정신생물학, 정신약물학이 득세하고 있고, 정신분석에 대해서조차 생물학적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해 지고 있는 이 현대에 인간의 심성과 영혼을 중요시 하는 분석심리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분석가가 되고 나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주변에서 자주 듣던 ‘융은 취미로 하고 이제 생물학 연구 좀 하지?’ 하는 이야기는 다소 잦아든 듯하다. 이제는 분석심리학에 대해 좀더 독자적인 연구를 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으며 실제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준비 중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가 하고 싶었던 풍수지리에 대한 연구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또 Functional Neuroimaging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연수를 계획하고 있다.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관심이 너무 많은 것일까?

분석가가 되기 전부터 비슷한 주제의 갈등과 고민은 계속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꿈을 통해서 답을 얻고자 노력하였으나 그럴 때 마다 내 꿈은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꿈에 대한, 무의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에는 분석심리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내 의식의 의도와 다른 것 같아 실망하기도 하였고 분석심리학 공부를 그만 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환자 혹은 내담자 들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자신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며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본다. 심지어는 평생 자신은 하고 싶지 않은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들도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밤 늦게 까지 힘들게 시장에서 국밥을 말아 생계를 유지하지만, 너무나 환한 웃음 속에서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나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어려운 처지에 온갖 고생을 다 하며 모은 돈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선뜻 내 놓는 사람들, 너무나 사소한 일상 속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받는 사람들, 남들은 모두 현실에 안주하는 나이에 새로운 어떤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하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고 해야만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나의 이러한 갈등 속에서 한가지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과연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것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내 현실에 주어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답’을 얻는 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어떤 것만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보다 내가 잘 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즉, 내가 뭘 하며 사는가 보다는 내가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지만, 통찰을 얻기 전까지는 소귀에 경읽기라는 사실!

 

2009년 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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