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융심리분석연구소

Jung Institute of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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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국제분석심리학회 참가기

November 1, 2013

 

나의 국제 분석심리학회 참석은 지난 2004년 바르셀로나 이후 이번(2013년)이 두번째이다. 두 번의 학회 참석 모두 뜻 깊은 것이었다. 바르셀로나 학회에서는 한국융분석가 협회가 IAAP산하 국제공인협회로 인준받는 자리였고 이번 코펜하겐 학회는 내가 처음으로 국제분석심리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2004년도에는 Candidate자격으로 참석하였지만 한국융연구원의 일원으로써 경사스러운 자리였고, 이번에는 나 개인적으로 나의 연구를 전세계의 융학파 청중들에게 알린다는 점에서 영광스러운 자리였다.대학에 있을 때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국제학회에 참석해 보았지만, 나의 관심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학회들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번학회만큼 학회 자체에 집중해 본 적은 없었던것 같다. 자유로이 내 시간을 사용하기 힘들어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그점이 오히려 학회 참석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코펜하겐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 혼자 여행 준비를 다 해야 했으므로, 학회 등록, 호텔예약, 비행기표 예약 등을 전부 나 스스로 해야 했고, 발표에 대한 불안으로 코펜하겐에 대한 예습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코펜하겐은 몇년전 스톡홀롬에서 본, 바다 건너편에서 본 것 외에는 인어공주 상 정도 밖에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부산에서 상해를 거쳐 도착한 코펜하겐은 무더위의 막바지에서 허덕이다 온 동양의 이방인에게 서늘한 저녁을 선사했다. 호텔방에 들어서니 사람하나 누으면 꼭 맞을 크기의 침대 두 개가 붙어있고 침대와 벽 사이 사람하나 겨우지나갈 만한 공간에, 화장실도 변기에 앉으면 세면대가 어깨에 부딛히는, 물가비싼 선진국의 실용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오랜 비행으로 피로가 몰려와 잠이 쉬 들었으나 역시나 새벽 두시경 깨서는 자는둥 마는둥 하면서 코펜하겐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다음날 아침 걸어서 도착한 학회장은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내 이름이 적힌 뱃지와 인쇄물 등을 받아들고 기조연설장에 들어섰다. 바르셀로나 학회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포함하여 유색인종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으며, 몇안되는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번 학회는 100 Years on: Origins, Innovations and Controversies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지금부터 100년전인 1913년은 융이 프로이드와 학문적으로 결별한 해라는 점에서, 또 레드북 집필을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번학회는 융이 학문적으로 독립적으로 자신의 학문을 시작한지 100년이 되는 해로서, 융학설의 시작과 발전, 그리고 논쟁점들에 대한 토의에 대해 준비된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부터 학회장에 도착할 때까지 나 자신의 발표 준비로 인해 어떤 내용들이 발표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별로 두지 못하였다. 학회장에 도착해서야 프로그램을 받아들고는 어떤 내용들이 발표될 것인가 대충 훑어보았다. 이번 학회에서는 학회장의 인터넷 웹하드에 발표내용을 올려놓고 각자가 자신이 가져온 스마트폰이나 랩탑등에서 다운로드하거나 아니면 학회장에서 준비한 태블릿을 통해 바로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한국에서 랩탑을 준비해 갔지만 모든 내용이 올려져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영어권이 아닌 나같은 청중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학회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융의 정신분열병에 대한 이해에 관한 내용이었다. 과연 융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의학적 치료와 현대의 그것에 대해 비교를 한 강의였는데, 융 시대의 정신의학과 비교해서 과연 현대의 정신약물학적인 치료가 환자개인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또 현대 정신의학에서 어떤 것들을 간과하고 있는가 등에 대한 것이었다. 또 우리는 망상, 환청 등이 정신분열병의 주된 증상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들이 Bleuler의 4A 증상 (Affect, Autism, Ambivalence, Association)에 이차적으로 생긴다고 보았기 때문에 약물을 통해 망상이나 환청의 치료에 중점을 두는 것 보다 정신치료를 통해 4A 증상들의 치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많이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정신과 의사로서의 융에 대한 이해와 정신과 의사이면서 융분석가인 나 자신의 역할, 또 정신의학 안에서 Jungian Psychiatry의 아이덴티티 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한가지는 한국의 융학파 학자들에게 친숙한, 학회장에서 나 당신 안다고, 한국 왔을때 당신 강의들었다고 반강제적로 억지스럽게 인사를 나눈 Ann Ulanov선생님의 강의였다. 강의제목도 “In the end is my beginning”으로 매우 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강의 내내 시 낭송회장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매우 천천히 또박또박 강의를 진행하셔서 내용을 알아들을수 있는 듯 했지만 그렇지도 않았고, 못알아 듣는 와중에도 그 느낌만은 강하게 전달되는 것 같아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번 학회에서는 이전에 해 보지 못한 경험을 두가지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보섭 선생님과 함께 Delegate meeting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것은 국제분석심리학회 산하 Voting Society들의 대표자들이 참석해서, 토의와 투표를 통해 다음 임기 동안의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로, 오후에 약 4시간 넘게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되는 회의라 매우 지루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지만 매우 빠른 템포로 흥미있게 진행되었으며, 행정적인 사무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구나 하는 것을 구경할 기회가 되었다. 모든 대표자들이 관심을 보이며 경청하고 코멘트하는 것들을 볼 때, 이때까지 내가 많이 경험했었던 회의들과는 다소 차이가 느껴졌고 반성을 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많은 회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역시 다음 학회장소의 선정 투표였는데, 비엔나와 쿄토 중 쿄토가 선정되어, 다음 학회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게 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학회 마지막날 저녁에 열리는 갈라디너에 참석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학회에 등록하면서 별 생각없이 신청을 했었는데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왜 했나 후회를 하기도 했었다. 목요일 마지막 세션에 내 발표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금요일에는 관광을 해야겠다 싶어 나 혼자 버스 투어를 했다. 시간 관계상 투어를 마치고 곧바로 참석해서 복장이 좀 걱정이 되었는데 그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서양인들의 파티문화에 익숙치 않은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정장과 드레스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내 모습에 좀 민망했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걸 어쩌랴 하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파티에 동행했다. 이보섭 선생님 덕분에 Joan Chodorow 선생님과 그녀를 따르는 몇사람과 동석을 하게 되었는데 한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동석한 사람들 중에 내 발표 시간에 질문과 코멘트를 해 준 스웨덴 분석가와 노르웨이 분석가가 있는게 아닌가! 게다가 동석한 다른 이들에게 내가 풍수에 대해 발표를 했다고 설명해 주자 그 중 한 유태계 이탈리아 분석가가 자신이 도시계획과 관련해서 연구를 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동시성 현상이라고 웃었던 일이 있었다.

 

 

학회발표라는 스트레스 때문에 한국에서 여행준비를 전혀 못한 점은 어쩔수 없었지만 머나먼 곳에 어렵게 시간내어 간 학회인데 여행을 전혀 안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만 하고 있자니 웬지 부아가 치밀어 내 발표날 전에 잠시 짬을 내어 가까이에 있는 몇군데를 구경하고 발표 다음날인 금요일에는 버스를 타고 종일 관광을 하였다.

 

 

우선 코펜하겐은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학회 발표때 혹시나 청중 중에 누군가가 코펜하겐의 풍수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는 질문이 나올까봐 선무당 사람잡듯 지세라도 봐 둘려고 주변을 살펴봤지만 산이 보여야 뭘 얘길하지 싶어 포기하고 말았다. 어쨌든 평지가 많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던게 있어 자전거를 살피는 버릇이 있는데 이건 뭐 기어가 달린 자전거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만큼 시내가 평지라는 반증이리라. 호수도 많아보였는데 그것마저 인공호수란다.

 

 

예습을 별로 안하고 간지라 뭘 봐야 할지 잘 몰라 걸어서 발길 닿는대로 몇군데를 갔었다. 국립박물관은 딱히 눈에 띄는 건 별로 없었고 마침 바이킹 특별전이라는 걸 해서 구경을 했었다. 거기 카페테리아에서 바이킹이 먹는 식사라고 해서 속는셈치고 사 먹었는데 바이킹이 이것 먹고 무슨힘으로 거친 파도를 헤치고 다녔을까 싶은, 그냥 평범한 핫도그였다. 그외에도 지금 여왕이 살고 있다는 아말리엔보어 궁전, 로젠보어 궁전, 크리스티안보어 궁전 등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휘리릭 지나쳤는데 다른건 별로 기억에 없고 크리스티안보르 옆의 토발드센 조각박물관이란 곳을 우연히 들어가 보게 되었는데 인상적인 조각품들이 많았다. 그곳은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토발드센이라는 조각가를 기리는 곳이라고 한다.

 

 

금요일 하루는 버스를 타고 코펜하겐 시외로 투어를 갔었다. 덴마크 남쪽부터 북쪽까지 둘러볼 기회였는데 시외의 풍경은 역시나 산이 없다는것 말고는 특이한 점은 없었던 것 같다. 햄릿의 배경이 되었다는 크론보어 성,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성인 프레데릭스보어 성, 또 덴마크 왕실 무덤인 락스킬드 성당과 바이킹 박물관 등을 구경하였다. 유럽의 많은 성들을 많이 보지는 못하였지만, 내가 가본 곳인 비엔나, 빠리, 그리고 스페인의 성들과 비교해 볼 때 화려함은 좀 덜한 것 같았고 추운지방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좀 무겁고 어두웠던 것 같다.

 

 

 

 

 

이번에 발표하게된 내 연구는 나의 분석초기에 나타난 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분석가 선생님께서 풍수지리에 대한 연구를 해 보는것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을 해 주셨을 때 불현듯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현상에 대한 어릴 때 부터의 내 관심이 다시 떠 올랐다. 하지만 당시 대학에 근무함으로 인해 그 관심은 곧 다시 깊이 가라 앉았고, 또 연구원 졸업 디플롬 논문을 작성할 당시에도 임상적인 연구가 더 낫겠다는 당시 분석가 선생님의 권유로 일단 뒤로 미루어 놓았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풍수 공부를 시작하면서 당시 아직 정리가 되기 전이었지만 발표를 해 보려고 초록을 내었으나 그때는 아쉽게도 발표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이후 뉴질랜드의 윤홍기 교수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논문의 수정보완을 거듭하여 2011년에 다시 초록을 제출하여 2012년에 드디어 발표의 허락을 받을수 있었다. 발표 허가가 나고도 1년 조금 더 되는 시간동안 발표 준비를 하였으니, 대학에 있을때에 나 자신이 논문을 많이 쓴 사람은 아니지만, 대학에서 데이터만 있으면 한 두달 안에 해치우던 논문에 비하면, 그 내용의 완성도는 제쳐 놓더라도 거의 6년 가까이 상당히 긴 시간을 이 논문과 함께 보냈다. 오랜시간 동안 다른 일들을 하면서 소소한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지 않고 조금씩 해 나가는 것이 참 지루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세월을 보낸 지난 대학에서의 시간들이 떠올라 애잔한 마음이 들때가 가끔 있었다. 대학에 있을 때에는 한번도 해 보지 못한 국제학회, 소학회도 아니고 내 전공분야에서 가장 큰 학회에서 영어로, 그것도 90분동안 나 혼자만의 발표를, 대학에서 나오고 나서야 하게되었다는 점은 나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다를수 밖에 없었다. 또 발표 준비를 해 가면서 내가 다시 대학의 연구실로 돌아가거나, 혹은 옛 동료의 연구실에 가는 꿈 등이 가끔 나타나, 대학에서 열심히 연구하지 않다가 환자만 보면 되는, 지금의 나에게 어쩌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연구를 한답시고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교수라는 페르조나에 대한 과거의 회한때문에 이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무사히 끝내면서, 또 국제 학회 참석에 대한 과거와는 다른 경험을 통해, 이 당시의 생각과 꿈들에 대한 내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자아는 발표에 대한 압박감으로 과거의 유치한 미련을 붙잡고 있는 동안, 내 무의식은 그 당시 나의 정신에게 필요했던 연구실이라는 장소를 담담하게 펼쳐줌으로써 전체로서의 내가 이 연구와 발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게 했던 것 같다.

 

 

 

여행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은, 집에 돌아온 뒤 곧바로 생각나는 것 보다는 시일이 좀 지난 후의 것이 나로서는 좀 더 의미있는 것 같다.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물론 기억은 많이 나겠지만, 그 기억이 여행에서의 느낌을 방해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 학회의 참석과 발표가 나에게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봐야겠다.

 

 

 

2013년 학회 참석 이후 쓴 글인데 '길'지에 투고한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어 올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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