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융심리분석연구소

Jung Institute of Busan

SINGLE POST

태양은 가득히 - 나와 내 그림자

April 6, 2006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1960년 르네 끌레망 감독이 만든 소위 ‘스릴러’로 분류되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당시만 해도 신인이었던 25세의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아 푸른 눈빛과 특유의 무표정한 연기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한의 전형을 연기하였다.

 

톰은 부잣집 아들인 친구 필립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5천 달러를 받기로 하고 이탈리아로 간다. 하지만 필립은 톰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다니며 마치 종 부리듯이 무시하고 학대한다. 급기야 요트여행에서 톰을 구명보트에 띄워 놓고 뜨거운 태양볕 아래 내버려둠으로서 심한 화상을 입게 한다. 결국 필립은 톰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다음 장면부터 톰은 필립행세를 하게 된다. 이제부터 톰의 재능이 발휘된다. 필립의 목소리, 행동 그리고 사인까지 완벽하게 흉내를 낸다. 하지만 그의 악행은 엉뚱한 곳에서 들통 나고 만다. 필립의 시체가 요트 끝 스크루에 딸려 올라옴으로서 이 이야기는 끝난다.

 

이 영화를 통해서 보면 톰은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진단기준에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먼저 사회 규범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서는 어떠한 거짓말이나 사기 등을 서슴지 않고, 공격적이고 폭력을 행사하며, 일정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무책임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학대, 절도 등을 저지르고도 이를 합리화하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등의 모습이 명백하다. 특히 원작 소설의 제목(재능 있는 리플리씨)과 같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도 계획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 또한 톰 역할을 연기한 알랭 들롱과 같은, 비록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남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이들의 마음속 핵심은 양심의 부재이다. 이들의 감정은 단지 극단-분별없는 분노나 부적절하게 과도한 즐거움-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원시적인 질투를 드러내며 자신들이 가장 원하던 것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들은 쉽게 약탈자가 되고, 타인의 권리와 사회의 규칙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이러한 악한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Wall Street에서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한 주인공은 그가 숙청한 동료들이나 그 과정에서 파멸된 생활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살펴 주지 않는 무정함을 보여준다. 그는 ‘탐욕이란 좋은 것’이라는 말로 양심이 미치지 않는 영역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Face Off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과대한 사악함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계획적인 시도, 행위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랑하고 그러한 자신에 대해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보고 끝내기에는 조금 아쉽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격들을 각각의 개인으로 보기 보다 한 개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자. 톰은 영화 처음부터 필립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그의 필체를 흉내 내고, 목소리를 따라하며 심지어 그의 옷을 입어보고 신발까지 신어본다. 하지만 그는 필립처럼 부잣집에서 태어나지도 못했고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교육도 별로 받지 못한 듯하다. 즉, 필립의 인격에서 열등한 부분이지만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필립자신의 일부이기도 한 ‘그림자’이다. 의식의 자아, 즉 필립은 자신의 열등한 부분인 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대하기보다는 그를 멸시하고 모욕을 주며 학대한다. 시간이 갈수록 필립과 톰의 관계는 악화된다. 자아와 그림자는 점점 멀어져 그림자는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돌보지 않았던 자아, 필립은 톰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열등한 인격인 그림자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즉 그림자에 의해 자아가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 의식의 핵인 자아는 없어지고 무의식에 있던 자아의 열등한 부분인 그림자, 톰에 의해 그 개인이 지배되어 버린다. 

 

 

비슷한 내용은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서도 얼마든지 등장한다. ‘네가 누구냐’, ‘쥐의 둔갑’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로 나타난다. 즉 진짜가 약해지거나 자신의 자리를 비운 사이 가짜가 진짜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영화에서 필립이 톰에 의해 살해되는 장소가 가히 교묘하다. 아무도 없는 광대한 바다 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 조그마한 요트위에서.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이다. 빛만 보고, 앞만 보고 달리지만 내 그림자는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있다.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다리며. 영화에서와 같이 내 그림자를 잘 다루지 않으면 그가 언제 나를 제압해 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그림자에게 관심을 가질 때 그림자는 우리에게 이때까지 내가 몰랐던 나의 재능, 즉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성의 샘으로 다가온다. 다가올 여름은 예년에 없는 뜨거운 여름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며 뜨거운 태양아래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에 관심을 가져보시길 권한다.

 

 

 

2005년 부산대학교병원 병원보에 쓴 글입니다.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Please reload

2017 부산융심리분석연구소